2010년 2월 5일 금요일

#15

토끼의 수명과 거북의 수명은 그들의 세포속에 규정돼어있다. 한 생의 예상된 기간은 그것의 유기 구조의 관점이다. 토끼와 거북이와 관련이 없는 추상적 개념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시간을 비교할 방법은 없다. 인간이 바고 이 추상적 개념을 소개시켜 누가 먼저 마무리점을 다다르느지 보는 경주를 조직했다.

#14

기근은 비극적으로 사건들이 밀집한 것이다. 완전히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북두칠성은 기근에 무관심하다.

#13

시간의 문제는 하늘의 어두움과 같다. 모든 일어난 사건들은 제각기의 시간에 새겨진다. 사건 때로 밀집되어 일어나고 그 시간들이 겹쳐지지만, 사건들이 밀집되어 있다고 해도 시간의 길이가 늘어나지는 않는 법이다.

#12

어느 이야기의 한 때

우리는 둘 다 이야기꾼이다. 등위로 눕고는 밤하늘을 본다. 밤이되면 확신을 도둑질하고 종종 신뢰의 모습으로 다시 돌려주는 다수의 별들의 보호 아래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맨 처음 별자리를 발명하고 이름을 지어준 이들은 이야기꾼이었다. 별무리들 사이로 상상의 줄을 그어서 그들께 이미지와 정체를 주었다. 그 줄에 꿴 별들은 하나의 긴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들과 같은 것이었다. 별자리를 상상해내는 것은 물론 별들 자체을 바꾸지 않았고, 그들을 둘러싸는 어두운 텅 빈 공간을 바꾸지도 않았다. 하지만 바뀐 것은 사람이 밤하늘을 읽는 방법이었다.

#11

안방 서랍장 화분의 이파리들 위에 유층을 놓았다. 불을 끄자 이 유층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화장대 위에는 건너편 창문을 바라보는 거울이있었다. 내가 옆으로 누우면 거울에 비친 별이 하나 보이고, 그리로 그 밑에는 서랍장 위의 유층이 보였다. 그 둘의 차이는 오직 반딧불이 유층의 빛이 좀 더 초록색, 더 빙하같은, 그리고 더 멀리있단 느낌을 주었단 것이다.

2010년 2월 1일 월요일

#10

보스니아의 프리예도르 부근 시골에서 어느 날 밤, 나는 걷다가 호박빛 녹색인 반딧불이 유층 한 마리를 풀숲 아래에서 찾았다. 주워서 손가락 위에 얹으니 전기가 흐르는 듯 오팔 반지처럼 빛났다. 집 가까이 도착하니 다른 불빛들로 유층은 자기 불을 껐다.

#9

이 번에는 머리를 숙이고 거리 한복판에서 먼지를 긁고 가만히 서 있는 수오리 혼자였다. 일 분쯤의 시간이 지나여야 나는 그가 거의 보이지않는 암오리의 등을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두 번 수오리의 발밑에서 암오리가 날개를 펴는게 보였다, 이내 다시 먼지 안으로 가라앉아 갔다. 수오리의 동작이 빨라졌다. 드디어 절정에 이르고는 수오리는 암오리 위에서 떨어지고, 암오리의 모습이 들어났다. 수오리는 암오리 옆으로 떨어지며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옆으로 길위에 떨어졌다. 납으로 가득 담긴 작은 새모양의 회색빛 가방처럼 먼지속에 기력없이 누워있었다. 암오리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두발로 일어서, 날개를 퍼덕이고, 목을 뻗었다. 이제는 새끼 오리들이 자신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있는 듯 해매나갔다.